티스토리 뷰

걷는 건 잘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특히 높이 올라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 산을 가도 꼭 둘레만 걷다 온다. 그런 내가 딱 한 번 능선을 타고 정상 비슷한 지점에 도달한 적이 있다. 거대하던 세상이 한없이 작아졌고, 사람들은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한 발 물러나 바라본 세상은 특유의 복잡함이 전혀 없었다. 제 아무리 기세등등하여도 결국에는 자연 아래 놓인 존재임을 그날 난 깨달았다. 이후로 산에 오른 일은 아직 없지만 이따금 그날을 떠올리고는 한다. 왜 사람들이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산을 기어코 오르는지 이제는 묻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아기자기한 우리나라의 산에 비해 해외의 산들은 규모가 상당하다.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높이, 쳐다보다가 목이 부러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마저 앞선다. 왠지 KBS 영상앨범 산 제작팀이 방문한 산 역시 그러한 형세를 띠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남미의 파타고니아는 ‘발이 크다’는 의미의 ‘파타곤(patagon) 에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한다. 높은 지대, 거침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온몸을 가득 동여맸을 원주민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무지로부터 비롯된 두려움이 폭력을 낳았고, 그렇게 하나의 문명이 스러졌던 게 지난 세기였다. 지금은 자연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만 누군가에겐 아픔의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이내 나는 평정심을 찾았고, 대자연의 웅장함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촌스럽게도 도시가 인간에게 최적화된 장소라 이제껏 믿고 살았다. 어딜 보아도 높은 빌딩에 시야가 가로막혀 갑갑할 만도 했지만 그 또한 느끼지 못했으니 참으로 둔했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원래부터 공간이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드넓은 평원을 질주하는 기분은 대체 어떤 것일까. 속도 내어 달리지 못하는 게 차 아닌 과나코와 냔두 등 때문이라는 사실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딱 취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만이 주어졌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촬영에 나서야만 했던 취재팀에게서 삶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모두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고, 왠지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힐링’을 경험하는 묘한 업무가 아닐까 짐작이 갔다. 모든 기준은 스스로가 정한다. 타인과의 비교는 소용이 없으며, 경쟁보다는 서로를 향한 믿음과 협력이 필요했다. 모두가 대자연을 향한 경외감을 표현하며 두려움을 비워냈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광막함이 제 것이 되었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는 법이다. 꼭 채우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비우지 못한다면 그 또한 유죄일 것이다. 왠지 지금 나에게 절실한 무언가가 파타고니아에는 있는 듯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인지, 몇몇은 기꺼이 여행자 신분을 자처해가며 파타고니아를 찾았다. 거대한 배낭이 그들의 험난한 여정을 대변했다. 하지만 그 또한 부러웠다. 떠나고플 때 떠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마음이 차분해졌다. 단지 착 가라앉았던 게 아니다. 말로는 설명이 힘든 감동 비슷한 무언가가 내 안에 형성됐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를 산 사진으로부터 맛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본 바 없으나 그리워했던 원시적인 무언가를 책으로부터 만날 수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동시에 1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이들을 향한 존경심도 여기에 더해졌을 것이다. 한 우물을 파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은 없어진 지 오래요, 이제는 두 개로도 부족해 세 개, 네 개 혹은 그 이상의 일을 한꺼번에 수행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산에서 겸손에 눈 뜨고 인생을 배운 사람들. 그들이 있어 우리 또한 삶을 배운다.

지구 반대편 감춰져 있던 비경을 찾아
‘세상의 끝, 남미 파타고니아’
KBS 〈영상앨범 산〉, 10년의 기다림 끝에 만나는 첫 번째 포토 에세이

KBS 2TV 영상앨범 산은 방 안에 편히 앉아 아름다운 산으로 떠날 수 있는 선물 같은 프로그램이다.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국내외 유수의 산 풍경은 마치 보는 이도 함께 바람 부는 산등성이를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국내에 웰비잉 바람이 거세던 지난 2006년 1월 1일, 히말라야 방송을 시작으로 어느덧 10년째, 500회를 바라보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 영상앨범 산. 제작진이 직접 거대한 자연 속에서 포착한 거침없고 꾸밈없는 영상은 자극적이고 떠들썩한 방송에 지친 이들의 눈과 귀를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은 쉼터가 되어왔다.

세상의 끝, 남미 파타고니아 는 그동안 세계 350여 개의 등산로와 트레일을 소개한 영상앨범 산이 전하는 첫 번째 포토 에세이다.모든 것이 너무도 거대해 차라리 신기루 같던 그곳에서 방송을 통해 다 보여주지 못한 풍경과, 그 풍경들을 담으며 울고 웃었던 제작진의 땀과 환희까지 고스란히 들어있다.이 책은 영상앨범 산이 한 걸음 한 걸음 파타고니아에 발자국을 찍어가며 남긴 생생한 기록으로, 일반 가이드북으로는 불가능했던 파타고니아의 내밀한 속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행서가 되어줄 것이다.


CHAPTER 1. 바람의 땅, W 트레일
포토 에세이| 이 땅의 바람을 맞고 나서야 알았다
김석원 PD의 제작이야기
- 촬영을 시작하며
- 촬영은 전쟁이다
- 기다림 끝에 붙든 찰나
이상은 산악사진가의 소소한 호기심
- 거침없는 자연 속으로
- 엑또르! 이거 설마 와인이야?
- 이런 하늘을 안 찍어?
트레킹 정보 : 지도와 주요 경로
이상은 산악사진가의 트레킹 일지
트레킹 팁
- 파타고니아에서 트레킹하기 좋은 시기
- 산장 예약이나 시설 이용 시 챙겨야 할 사항
- 등산 장비

CHAPTER 2. 얼어붙은 시간 속으로, 페리토 모레노 빙하
포토 에세이| 태고의 시간 속으로
김석원 PD의 제작이야기
- 백색의 산
이상은 산악사진가의 소소한 호기심
- 빙하를 이렇게 쉽게 만나?
- 세 잔의 추억
- 황홀한 얼음의 길
트레킹 정보 : 지도와 주요 경로
이상은 산악사진가의 트레킹 일지
트레킹 팁
- 파타고니아 트레킹 순서
- 트레킹 간식
- 파타고니아의 먹거리
- 트레킹 중 생리현상 해결

CHAPTER 3. 꿈의 길을 걷다, 세로토레 & 피츠로이
포토 에세이| 꿈이라 해도 좋을
김석원 PD의 제작이야기
- PD는 죽을 수도 없다
이상은 산악사진가의 소소한 호기심
- 잃어버린 시간
- 달콤한 낮잠
김석원 PD VS 이상은 산악사진가
- 위험한 동행
트레킹 정보 : 지도와 주요 경로
이상은 산악사진가의 트레킹 일지
트레킹 팁
- 고산병
- 알아두면 좋은 현지어

CHAPTER 4. 풍경이 내게 말해준 것들, 바릴로체
포토 에세이| 파타고니아에서는 길을 잃고 싶다
김석원 PD의 제작이야기
- 남보다 더 걷고 남보다 덜 쉬며
- 고맙습니다
이상은 산악사진가의 소소한 호기심
- 오래된 산장은 말이 없다
- 역시 파타고니아!
트레킹 정보 : 지도와 주요 경로
이상은 산악사진가의 트레킹 일지
트레킹 팁
- 바릴로체 추천여행지
- 검은 빙하
- 항공편
- 치안
- 파타고니아 인터넷 사정
- 현금 인출기

남아메리카 지도
파타고니아 지도
파타고니아 트레일에서 지켜야 할 것들
〈세상의 끝, 남미 파타고니아〉 용어 사전
기본 배낭 꾸리기
KBS 〈영상앨범 산〉 제작팀 준비물

책 속의 책|제작팀이 뽑은 잊지 못할 파타고니아 베스트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