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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검은 피> 허연 시인의 시는 오래전부터 접해왔지만 시집을 구매해서 제대로 읽은 건 처음이다. 유독 마음에 박히는 문장들이 있다. 죽이고 싶었고 사랑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 구절에도 마음이 흔들린다고. 이 시집에서는 목요일 이 그랬다. 어떤 날엔 읽으면서 울고, 어떤 날엔 읽으면서 내가 그때 왜 울었던가 생각한다. 신기하다.
나쁜 소년이 전하는 퀘이사의 신탁
새로운 감수성을 수혈할 미래에서 온 시집
부조리한 세계와의 지독한 불화와 사랑, 그 아름다운 신경질

해설을 쓴 평론가는 죽었고, 시를 쓴 시인은 사라졌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시인 김경주를 비롯하여 수많은 불온한 청춘들은 이 시집을 필사하며 돌림병 을 앓았다. 시집에 얽힌 이야기 또한 한 편의 시로 읽힐 만큼, 한편의 젊은이들이 ‘빨간 책’을 읽었다면, 또 한편에서는 몰래 숨어들어 이 ‘검은 책’을 읽었다. 바로 그 전설의 시집 불온한 검은 피 가 출간 20년 만에 부활했다.

허연 시인의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 가 출간되었을 때,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그 어떤 유(類)도 아니며, 자기만의 공화국 을 가지고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정공법으로 ‘무의미의 의미’라는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미학을 창출해 냈다. (문학평론가 故 황병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추함, 비루함, 소멸, 허무 등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지독하게 대면시키며 불온한 검은 피 를 끊임없이 수혈한다. 비애로 가득 찬 이 시집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보편적 형식으로 노래하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감싸안으며 사랑을 치열하게 탐색한다. 그는 그가 몸담고 있는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충돌하면서 어디에도 희망은 없으므로 너를 사랑한다 고 고백한다.

그렇게 나쁜 소년의 불온한 검은 피는 여전히 우리의 혈관을 흐르며 심장을 뜨겁게 데운다. 혈서를 쓰듯 한 방울 한 방울 검은 피로 그려 낸 62편의 시편들은 우리를 ‘첫 시집’이라는 그 거부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감동으로 몰아넣는다. 이것은 20년 전 과거의 시집이 아닌, 영원히 우리보다 20년쯤 앞선 미래에서 온 시집이다. 그것이 오늘, 그리고 내일, 우리가 이 시집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1부

지옥에서 듣는 빗소리
전쟁 기념비
내가 나비라는 생각
날아가세요―비가(悲歌)
장마?장마?장마―K를 추모함
상계동
새벽
무반주
경원선
나는 빛을 피해 걸어간다
K
방문 앞에 와서 울다
그날
목요일
비야, 날 살려라


2부

권진규의 장례식
곡마단
구상(具象)
공작 도시―손상기의 그림에서
최근에 만난 분 중에 가장 희망적이셨습니다
손상기는 곱추가 아니다
판화
오윤 작(作), 바람 부는 곳
GOGH
영화에서
철도원―영화
대화
오 샹젤리제
Midnight Special?1
Midnight Special?2
필름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

나는 또 하루를
이사


3부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했다
저녁, 가슴 한쪽
참회록
갈대에게
별곡?1
별곡?2
교정(校庭)
철로변 비가(悲歌)
칠월
내 사랑은 언제나 급류처럼 돌아온다고 했다
진부령
나를 가두지 마
꽃다발
내 사랑은


4부

거미와 나
포구
잠들 수 있음
벽제행
편지
출근
나무
희망
그해 폭설
파르티잔
불간섭
그날도 아버지는
청량리 황혼―CANVAS에 유채


발문|김경주
퀘이사의 신탁